타작마당

일백 데나리온의 다툼
none 2010-01-01 오전 8:19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15:1-2)”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깨끗함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면 아버지 하나님의 보살피심으로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들을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가 닥쳐와서 일이나 말씀의 교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벗어나게 되면 다툼과 변명밖에 남을 것이 없습니다. 특히 헌금에 대한 문제는 더욱 그렇습니다.
헌금은 하나님의 일을 위한 일을 하는데 쓰이는 것은 당연하고 또 그렇게 되어져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행위의 믿음을 강조하면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믿음이 되고 맙니다.
모든 것이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사실에 기초를 두고 일백 데나리온의 사실을 풀어야 함에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떠나서 헌금 자체의 유용성과 타당성을 강조하여 권유하거나 강권하면 믿음으로 나타나는 믿음의 행위가 아니고 행위를 믿음으로 나타나게 하는 행위의 믿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겠느냐 (요5:44)”

탕감 받은 일만 달란트의 사실은 묻어둔 채 헌금의 당위성을 주장하여 성도들의 마음을 흔들어 화목함을 깨뜨림은 일백 데나리온의 빚을 자기의 영광으로 만드는 행위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 하리이다.(요6:5-7)”

예수께서 눈을 드심은 영적으로 보시니 많은 영의 무리를 보신 것입니다. 주께서 제자 빌립에게 이 상황을 시험해 보시니 빌립은 육의 계산으로 적은 헌금으로는 감당할 수 없음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보리떡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로 축사하시고 수천 명에게 기적을 베푸신 일을 사복음서 모두에 기록되어 있음을 잘 알 것입니다.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지 못하느냐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열 둘이니이다.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일곱이니이다. 가라사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막8:18-21)”

비록 아이가 가진 것이 밀가루떡보다 값싼 보리떡 다섯 개와 보잘것없는 작은 물고기 두 마리 뿐 이지만 주께서는 적은 것에 축사하시고 큰 무리를 넉넉하게 먹이셨습니다. 또한 적은 것으로 더 많은 사람이 나누면 더 많이 남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성령의 눈으로 보시고 듣고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적은 것으로도 여럿이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의 영광을 취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빙자하여 세상에 무엇을 쌓는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하는 일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6:33-34)”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2010.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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