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룻기 1:1
2000-06-17 오후 5:05
사사들의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였는데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향하였더라’ (사사기 21:25) 표면 세계가 아니고 이면 세계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창세기 1 장을 읽을 때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를 그저 보이는 표면 세계의 밤과 낮의 개념에서 아무렇지 않게 보아 넘기지만 여기에 ‘저녁이 되며’는 사람의 사정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정이시기 때문에 사람의 생각의 한계에서 헤아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정은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알 수가 없습니다.

선지자 에스겔의 대답이 바로 증거합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오직 주께서 아시기 때문에 주의 영이 계신 곳에만 자유함이 있습니다. 진리는 나쁜 것이 먼저입니다. 빛에는 어두움이 증거될 수 없습니다. 만일에 빛이 먼저이면 어두움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빛이라 함은 어두움이 전제되지 않고는 빛이라 할 수 없습니다. 결코 빛이 먼저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말씀은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입니다. 먼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입니다. 이것이 처음이요 시작이요 알파입니다.

그래서 룻기는 사사들의 치리하던 때 곧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던 때부터 시작합니다. ‘그 땅에 흉년’, 땅이 혼돈했습니다.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공허했습니다. ‘왕이 없으므로’, 빛이 없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그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좋아하시지 않는 혼돈, 공허, 흑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습니다.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그리고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습니다.

우리 표면적인 해 아래의 세계에서는 빛은 어두움을 삼킵니다. 그래서 빛이 있으면 어두움은 없습니다. 이는 순간의 변화입니다. 그러므로 해 아래서 난 사람의 생각의 지혜로서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본능은 멸망에서 나온 것이므로 본능으로 아는 것으로는 멸망할 뿐입니다. 이면의 어두움과 빛은 나누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하심이 진리의 말씀입니다.

빛이 어두움을 삼켜 어두움이 없는 것은 끝이요, 나중이요, 오메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의 결국입니다. 이는 입법자와 재판자이신 유일하신 하나님의 권한입니다. 그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평안도 짓고 환란도 창조하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순서는 어두움이 먼저이고 빛이 나중이며 환란이 먼저이고 평안이 나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첫 표적이 바로 가나 혼인 잔치의 포도주입니다. 기록되기를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함과 같은 것입니다.

첫 아담의 창조는 낮은 창조였습니다. 그 칠일 안식일은 그림자였습니다. 그 창조는 어두움의 창조요 환란의 창조입니다. 그래서 칠일 안식일에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는 이 ‘새 일’이 마지막 아담을 지으시는 새로운 피조물들입니다. 이는 빛을 지으심이요 평안의 지으심입니다.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신 이 다른 날은 마지막 아담과 그 아내 마지막 하와(어린양의 신부)까지 지으시고 참으로 쉬시는 영원한 안식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날이라 하셨고 이 다른 날을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하신 ‘오늘날’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일 쉬느니라’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표면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이 있으나 이면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지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우리 눈 앞에 밝히 보며 또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하고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봅니다. 이는 표면 세계가 아니고 이면 세계입니다. 나온 바 본향(표면 세계)만 있고 보다 더 나은 본향(이면 세계)이 없는 육신에 속한 자들은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지도 못할 일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만 볼 수 있고 주목할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습니다.

보다 더 나은 본향(이면의 본향)을 사모한 아브라함과 선진들은 이 사실들을 보았습니다. 기록되기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을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함과 같은 것입니다.

주 예수께서도 이에 대하여 증거하시기를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이면의 세계(영의 세계)는 시간도 ‘그 때가 이 때’이며 공간도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못합니다. 그러므로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사사들의 치리하던 그 때가 이 때인 사람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하신 증거가 지금 이루어집니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정과 섭리와 그 이루심의 영광을 룻기서를 통해서 오늘날 우리에게 밝히 보이십니다.

유다 베들레헴은 하늘의 세계 곧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있는 세계요 유업 받을 아들이 있는 세계요 영원한 생명의 세계요 썩지 아니할 세계요 강한 세계요 영광스러운 세계 곧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넘치는 복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모압 지방은 땅의 세계 곧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세계요(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유업 받을 아들이 죽은 세계요(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 받을 수 없고), 멸망의 세계요(죽기를 무서워 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썩을 세계요, 약한 세계요, 욕된 세계요, 악하고 무자비함이 넘치는 저주의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유다 베들레헴은 위의 세계요 모압 지방은 아래 세계입니다. 유다 베들레헴은 주인의 세계요 모압 지방은 종의 세계입니다.

이제 우리가 이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정을 눈을 열어 보십시다.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은 하늘의 하나님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 아내’라는 기록은 ‘하나님의 사정을 하나님의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라고 증거된 것과 같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십니다. 성령께서는 결코 자기 뜻대로 하지 않습니다. 기록되기를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셨고 또 누가 증거하기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그 아내’라고 가리킨 것입니다.

그리고 두 아들은 첫 아담과 마지막 아담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깊이 생각할 것은 이 세상(모압)에서 보는 것과 저 세상(유다 베들레헴)에서 보는 것과는 반대입니다. 우리 땅에서 보는 것은 불순종의 아담이 먼저이지만 우리 하늘에서 보는 것은 순종의 아담이 먼저입니다. 그래서 유다 베들레헴 사람을 말할 때는 말론과 기룐으로 말론이 먼저이지만 모압여자에는 오르바와 룻으로 오르바가 먼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땅에서 마지막 아담이 우리 하늘에서는 만물보다 먼저 나신 자요 증거하시기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도적이요 절도요 강도’라고 하셨습니다. 기록되기를 ‘나는 알파요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다’고 하신 뜻을 성령으로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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