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복음

구원을 이루는 이정표 (4)
2005-06-13 오후 5:55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벧후 1:5-9)

구원을 이루는 이정표는 시작부터 성령이 아니고는 만날 수 없습니다. 기록되기를『....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하신 바와 같이 이 길은 시작부터 성령을 좇아 행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권면하시기를『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절제는 오직 성령을 좇아 행함으로 그 이정표를 통과할 수 있습니다. 이는『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7) 하심과 같기 때문입니다.

육으로 난 우리 모든 사람들이 가장 힘든 이정표가 바로 절제에서 인내에 이르는 이정표입니다. 이는 육이 끝이 나는 이정표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정표를 통과하는 사람의 몸에는 예수의 흔적이 남습니다. 기록된 바『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갈 6:17) 하심과 같습니다.

이는『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3-14) 하신 증거대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절제는 오직 영으로써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앞서 가신 선진께서도『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 9:27) 라고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갔습니다. 기록되기를『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이란 증거는 이미 영의 나와 육의 내가 함께 공존하여 싸우는 선한 싸움이 있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이 육의 행실을 죽이는 것이 아니고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입니다.

이 후에는 반드시 인내의 이정표에 이르게 됩니다. 이 이정표의 인내는 사람의 인내가 아니고 하나님의 인내 곧 그리스도의 인내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육이 다시 세워질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하여 이 인내의 이정표만 거치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계신 처소에 이르게 됩니다. 기록되기를『주께서 가라사대 네 발에 신을 벗으라 너 섰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행 7:33)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인내의 이정표는 사람으로서는 결코 통과할 수 없습니다. 기록되기를『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 하심과 같고 또한『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 9:16)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성경에『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마 19:26)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인내의 이정표를 통과하는 것은 육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영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후 3:5)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눅 21:19) 하셨고 또한『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4)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되새김질 하거니와 이 인내는 사람의 인내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인내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1-2)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말째 김윤구

인쇄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