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작마당

포도나무와 농부
마당쇠 2005-10-26 오전 9:56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요 15:1)

주 예수께서 포도나무와 농부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왜 그냥 “포도나무”라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참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이는 포도나무가 주가 아니라 농부가 주되심을 밝히 드러내시려는 깊은 뜻이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주의 우편에 계신 주께서 그 노하시는 날에 열왕을 쳐서 파하실 것이라』(시 110:5) 하신 증거의 말씀에서 주와 주의 우편에 계신 주라고 증거 하신 “두 주”가 계십니다.

주는 오직 한분뿐인데 “주의 우편에 계신 주”라고 주를 두 분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성경에는 수많은 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록되기를『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딤전 6:15)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만왕과 만주는 무엇을 말씀하심이며 또한『하나님이 하나님의 회 가운데 서시며 재판장들 중에서 판단하시되』(시 82:1) 라고 기록된 “하나님이 하나님의 회”란 무슨 말씀이며 또한 “재판장들 중에서 판단”이란 무슨 말씀이며 또한『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요 10:34-36) 하신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이는 곧 신이 낳으신 아들은 곧 신이라고 증거 하신 말씀입니다. 곧 양이 낳으면 양임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신이 낳으신 아들이라도 자기를 낳으신 신의 형상으로 생명은 하나일 수는 있어도 자기를 낳으신 신의 본체와 동등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만물을 저의 발 아래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저의 아래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고전 15:25-28) 라고 차별을 두고 있습니다.

농부와 포도나무의 차별, 또한 아버지와 아들의 차별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은 참 포도나무가 농부요 아들이 아버지라는 속임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농부와 포도나무가 하나라고 말 할 수는 있어도 농부와 포도나무가 일체라고 말 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라고 말 할 수는 있어도 아버지와 아들이 동등하다고 말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들이신 주 예수께서 내가 아버지와 일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일체라는 말과 하나라는 말의 뜻은 다릅니다. 다만『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요 10:30) 라고 기록된 말씀에서 다들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 이어지는 말씀에서『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께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을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요 10:31-36) 하신 증거대로 나는 아버지 하나님이 아니고 나는 그의 보내신 아들이라고 드러내신 말씀으로 보아 아버지와 아들은 차별됨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농부와 참 포도나무는 다르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동등할 수 없습니다. 이러므로 기록하시기를『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3) 라고 하셨고 또한『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벧전 1:21) 고 구별하여 증거 하셨습니다. 이를 알게 하신 진리의 영께 감사드립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댓글 2개
빛과 소금 2005-10-26 오전 11:26
평안하신지요... 글을 읽고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장)
상기 구절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본체라고 하셨는데 이는 어떻게 보아야 하나요,,
그럼 삼위일체 교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요...
세분이 구분이 되나 일체는 아니고 하나다,,,일체라는 용어가 모호하기 합니다만,,,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은 신이다라는 말은 참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신화가 되어간다는 뜻인가요,,,이 때 본체와는 동등할 수 없지만 생명 즉 영적인 아들들로서의 신을 의미하는지요,,,,

김윤구 2005-10-26 오후 1:53
진리의 사랑이 늘 함께 하시기를....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형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본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위 본문에서 “본체”에 (형체)라고 첨부했고 또한 “형체”에 (본체)라고 첨부한 것이 바로 글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말씀의 뜻입니다. 이러므로 성경은 말로 볼 것이 아니라 말씀의 뜻을 따라 보아야 할 것입니다.

먼저 개역 한글판 성경에서 범례(창세기 전 페이지)를 보면 * 원문에 견부한 숫자는 난외의 주와 같이 번역할 수도 있다 함임* 이라고 씌어 있습니다. 이를 따라 본문에서 “본체”에 견부한 작은 숫자 “4”는 난외의 “형체”로도 번역할 수도 있고 또한 본문에서 “형체”에 견부한 작은 숫자 “6”은 난외의 “본체”로도 번역할 수도 있다 함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을 범례를 따라 다시 번역하여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형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본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라고도 번역할 수도 있다 함입니다.

표준 새 번역에는 “하나님의 본체”를 “그분은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로 번역되었고 또한 현대인의 성경에는 “하나님의 본체”를 “그분을 원래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고 계셨지만”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는 말씀은 하나님의 본체시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면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의 형체십니다. 이에 대하여는 요한복음 1장에서 밝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하심은 곧 하나님의 본체를 말씀하시는 증거입니다. 그러나『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하심은 하나님의 형체를 말씀하시는 증거입니다.

이러므로 아들을 나타내시기 전에는 본체로 보아야 하고 아들을 나타내신 후에는 형체로 보아야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그 아들도 역시 혹은 “본체”로 혹은 “형체”로 볼 수 있으므로 개역 한글판 성경이 더욱 가깝습니다.

만일 그리스도 예수를 본체로만 본다면 동등한데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여기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만일 본체로만 본다면 그리스도의 죽음도 거짓 쇼이고 하나님이 그를 다시 살리셨다는 기록도 거짓 쇼일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편에서는 “하나님의 본체”로 보아야 마땅하고 사람의 편에서는 “하나님의 형체”로 보아야 마땅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하나님 편에서는 “종의 형체”로 보아야 마땅하고 사람의 편에서는 “종의 본체”로 보아야 마땅합니다.

사람의 편에서 본 그리스도에 대하여 기록하기를『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하심이 마땅하므로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즉 그리스도 예수는 “종의 본체”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하나님의 형체가 되었으면 다시 하나님의 본채가 될 수 없습니다. 형체가 되기 전에 정자(精子)는 본체이나 형체가 된 후에는 아들이지 계속 정자(精子)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러하므로 신의 아들들은 작은 신들로서 신의 성품에 참예할 수 있습니다. 기록되기를『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벧후 1:4)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이는 아버지의 생명을 그대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삼위일체의 교리는 변론의 제목은 될 수 있어도 깨달음의 제목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이신 그리스도는 깨달음입니다. 말씀을 궁금해 하시는 형제님과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 진리의 영께서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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