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작마당

하나님의 선물과 열심
peter 2019-01-21 오전 3:31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요6:28-29)
하나님의 아들로 보내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믿음)과 아는 일(행함)에 하나 되게 하심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로 거져 주신 믿음의 선물과 성령의 열심 있는 행함을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 안에서 은혜와 진리로 찾아 하나를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행함은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믿음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택하신 자녀에게 은혜로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11:2)
행함은 생명나무에 붙은 믿음의 가지에서 절로 맺는 열매로써 이는 농부의 열심이며 가지의 수고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열심은 육신의 일이 아닌 영적 행함에 있으며 이 또한 은혜로 행하는 것입니다
“육체의 지혜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15:4)
믿음은 믿음의 가지가 예수 나무에 붙어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를 사는 삶에 있으며
행함은 예수 나무에 붙은 믿음의 가지에서 절로 맺는 성령의 열매에 있습니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약2:22)
사람이 육적 돌감람나무로 자기를 소멸해 가며 그리스도라 하는 영적 참감람나무의 접붙임을 받아 그 영의 진액을 먹고 “그리스도와 합한 자는 한 영이라”하신 비밀을 힘써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5:31-32)
생명나무에 접붙임을 받은 선악을 알게 하는 가지의 기운이 마르고 존재가 죽어야 생명나무의 생기가 들어가 그리스도의 생명을 살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으로 거듭나기 위해 나의 죽음은 필연적인 일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거듭난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선물로 영혼구원의 그 나라를 볼 수 있게 되었고 (요3:3)
하나님의 열심으로 행하여 몸의 구속을 이루며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요3:5)
이는 사람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져서 나를 위해 예비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 안에 있는 믿음의 선물과 행함의 열심이 성령을 따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진 만큼 내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사시므로 나는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머리로 주신 믿음은 단회성으로 이미 이루어진 사실에 있고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 사는 자들의 행함은 지속성으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생명을 담아내기 위하여 나의 가치는 날마다 부인되고 죽어져서 아직도 우주의 찌끼로 남아 있는 육의 잔재를 온전히 비워내야 할 것입니다
생명을 위한 하나님 창조의 경륜은 가시적이며 육적인 물질계의 옛 창조로부터 시작된 첫 것을 폐하시고 보이지 않는 영적인 둘째 것으로 생명을 위한 새 창조의 일을 시작 하셨습니다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보이는 것은 잠깐 있을 육적 옛 창조이며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에 있는 영적 새 창조입니다
십자가에 주의 죽으심과 부활 하심에 연합하여 거듭난 영적 새 생명을 사는 것은 보이지 않는 약속과 증거를 믿음으로 받아서 더 나은 생명의 본향을 향해 믿음에 길 떠나는 아브라함의 신앙 여정과 같습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9:23))
믿음의 선물은 자기를 부인함에 있고 열심 있는 행함은 날마다 십자가를 지는 일에 있습니다
이 둘을 짝지어 하나의 진리로 깨닫는 생명을 하나님께서 영광으로 받으십니다
새 생명을 사는 천국의 서기관된 자마다 생명의 곳간에서 옛 것과 새 것을 내어 오며 어린 양의 노래와 모세의
노래로써 지난 날 살아 온 자기 태생의 어떠함을 드러내어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그 은혜만을 바라보는 하나님
절대 의존적 삶을 결코 부끄러워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를 가다가 강도 만나 피 투성이가 되
어 죽게 된 자는 형벌의 중한 죄짐을 벗을 때가 된 내 옛 사람의 모습인 것입니다
-너의 난 것을 말하건데 네가 날 때에 네 배꼽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케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로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너를 돌아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
하여 너를 긍휼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꺼린바 되어 네가 들에 버리웠었느니라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하고(겔16:4-6)
주님 판 것을 뉘우치며 피 밭에 묻힌 가룟 유다의 죽음이 곧 내 육의 정체입니다
자신이 흙에 속한 피조물임을 잊고 하나님을 배반한 불 순종도 모자라 죄인된 나를 살리시려고 이 땅에 오신
구원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그 패역함은 스스로 살기를 포기한 가룟 유다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구주의 피 값으로 사서 나그네의 무덤이 될 피 밭은 이 땅에서 약속과 증거를 가지고 행인과 나그네로
살다 가는 자들의 무덤이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눅10:30)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를 가다 강도 만나 피투성이가 되어 죽게 된 자를 구한 사마리아인은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죽었던 우리를 살리려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비유입니다 그러므로 강도 만나 죽음에서 구원 얻은 증거가 있는 자는 은혜 입은 자신을 드러내기를 부끄러워 아니하며 구원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함이 마땅한 것입니다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1:6)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약2:18)
진리의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알아 먹으면 믿음의 선물이 지향하는 행함의 열심도 나타내 보이실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우리가 죽은 자의 행실로 보일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직 죽은 자 안에서 부활의 싹을 틔우시며 믿음의 열매를 키워 내시는 농부의 열심에 의탁하여 내 믿음을 화합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강도 만난 자가 보일 수 있는 유일한 믿음은 은혜에 빚진 자로 자신의 이전 가치를 부인하여 구원을 갈망하는 절대 의존적 존재가 되어 가난하고 애통하며 주리고 목마름으로 죽은 자와 방불한 자신을 드러내어 절대 은혜에 자신을 맡기는 것 뿐입니다 또한 보일 수 있는 유일한 행함은 구원의 은혜를 진리로 선전하고 다시 만날 주의 약속을 바라보며 날마다 증거의 십자가를 지는 그것 뿐입니다 이 또한 그리스도의 약속과 증거를 받은 자 안에서 믿음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열심이 오늘도 행하고 계신 일입니다 이처럼 자기를 부인하며 내 의지로 감당하고 짊어져야 할 십자가마저 하나님의 일이라 우길 수 밖에 없는 염치없는 육신은 자기 존재성을 부인하고 흙의 실체를 드러내어 그리스도와 함께 죽기로 작정된 자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한 가지로 치우쳐 무익한 육적 자아를 끌어 안고 그것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음을 깨달은 자를 하나님께서는 산 자라 하시며 그 터 위에서 생육과 번성을 위한 하나님의 일하심과 그 나라의 건축이 시작되어지는 것입니다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요1:9)

‘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사람들의 빛이라”
생명과 사람들의 빛은 말씀의 생명싸개(삼상25:29) 속에서 하나입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고 사람들의 빛은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 있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전3:23)

생명과 사람들의 빛은 말씀의 씨앗으로 이는 본래 하나님의 것으로 창세 전부터 말씀 안에서 미리 아시고 택하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요17:6)
믿음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말씀으로 나타내신 생명에 있고
행함은 성령의 열심 있는 사람들의 빛으로 나타나 이 둘은 말씀 안에서 하나입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히2:11)
사람들의 빛은 말씀 안에 나와서 생명 속에 있고 생명은 말씀에서 나와서 사람들의 빛으로 역사하여 이 둘을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셨습니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전1:30)

그러므로 회심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고 중생은 아들로 주신 생명에 있으며 성화는 성령의 능력으로 행함에 있는 사람들의 빛으로 하나 입니다
이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 안에 이루어진 사실로 이를 믿는 자는 자기 출생의 어떠함을 알아 하나님을 향한 절대 의존적 존재가 되어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짐으로써 받은 은혜를 자기 죽음의 영광(요7:39)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새 생명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 생명과 사람들의 빛은 말씀의 생명싸개 속에 씨 가진 열매와 같습니다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12)
한 알의 밀 알 속에 담겨진 씨 가진 열매는 하나님 말씀의 씨앗 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한 알의 밀알로 땅에 떨어져 씨는 생명을 위해 죽음과 부활로써 믿음의 싹을 틔웠고
열매는 사람들의 빛으로 행하여 또 하나의 씨 가진 열매를 낳으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삼십배 육심배 백배로 더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씨는 아들로 말미암아 선물로 주신 생명에 있고 열매는 성령의 열심 있는 사람들의 빛과 같아서 말씀 안에서 믿음과 행함이 하나입니다
-내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약2:22)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전락한 옛 사람의 선악 구조 속에서 율법을 통한 도덕적 가치를 의로 여기며 생명을 탕진하며 허랑방탕 했던 인생의 헛된 날들이 한 가지로 치우쳐 무익 하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0-12)
내게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는 자아의 발견은 필연적 죽음을 선택케하여 구원의 경륜을 따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의 선물과 성령의 열심 있는 행함이 있게 하셨습니다
탕자의 심령 속에 먼저 하나님의 의가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들어와서 죽은 흙의 존재에서 티끌 만큼의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는 자아를 깨뜨리며 주의 죽으심과 부활 하심의 영광에 참예케 하심은 실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에덴의 화염검을 뚫고 생명나무로 오신 주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막았던 성소의 휘장을 자기 육체로 찢으시고 우리에게 새롭고 산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상 광야에서 복음의 소리를 듣는 자는 창세 전에 미리 아시고 정하신 하나님의 백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육체에는 생명의 열매를 기대할 만한 티끌 만큼의 의도 가지고 있지 아니하여 겨자 씨 만한 믿음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평토장한 죽은 흙에서 생명을 찾고자 애쓰고 힘 쓰는 것이 사람의 의이며 오늘날 부흥과 성장을
추구하여 썩어짐에 종 노릇하는 많은 교회의 모습이 그러합니다
믿노라 하지만 본능적 육신의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세상 유익과 욕심을 쫓아 자기 만족을 위한 기복 신앙을 추
구하고 선행과 구제로 덕을 쌓으나 이웃을 위하여 나를 불 사름에 내어 줄지라도 옛 사람을 벗지 못한 선악의
틀 안에서 행하는 모든 육신의 행위는 죄로 드러날 수 밖에 없으며 이는 자기 사랑일 뿐 진정한 이웃과 하나님
사랑일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에서 피 뿌림을 받아 십자가에서 피 흘림의 순교적 죽음을 경험
한 자에게 주신 복음을 살아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나눔이 진정한 사랑이며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
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1:8)
자기 만족을 위한 자선과 선행이 사랑의 본질이 아니며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그리스도의 생
명만 드러남이 진정한 사랑이며 주의 사랑은 모든 율법의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웃을 위한 진정한 사랑의 열매는 스스로 옥토가 될 수 없는 사람의 마음 밭에 있지 않고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씨에 있습니다
한 알의 밀 알 속에 씨 가진 열매처럼 말씀 안에 생명과 사람들의 빛은 말씀의 씨앗으로
길가와 가시떨기와 척박한 돌밭 같은 마음에 떨어져서 죽은 씨로 말미암아 죽었던 흙이 옥토로 변하여 생명의
싹을 틔우는 것입니다 죽은 흙에서 자기 존재를 부인하는 믿음과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생명의 행함을 통
해서만 성령의 열매를 볼 수 있으며 이를 이루어 가는 것을 믿음으로 행한다 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고후5:7)
내 자아가 심판되고 육체의 수고와 계획과 꿈이 사라진 뒤에야 죽은 내 안에서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영으로 일하십니다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
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벧전4:6)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보배로운 믿음은 사람이 자랑하고 판단할 수 있게 보여지는 것이 아니며
열매를 위한 열심 있는 행함도 스스로 드러남 없이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 감취어진 것입니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골3:3)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녀에게 하나님의 선물과 열심은 내 안에서 일을 시작하신 이가 이루시고 끝내실 것이므로 사람의 열심과 성과로 내세울 일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를 통한 의의 말씀이 경험되기 전까지는 사람이 자기 옳음의 한계를 내 놓을 수 밖에 없을 것이며 때가 오래므로 온전한 것을 허락하시기 전까지는 어차피 자기 그릇에 채워진 분량의 양식만이 진리의 전부인양 내 놓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요3:27)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선물과 진리의 열심은 사람의 지식과 의지의 강하고 약함에 상관없이 오직 복음 자체의
능력만으로 각자에게 허락하신 믿음의 분량을 따라 하나님의 약속과 증거가 있는 생명 안에서만 이루어질 것입
니다 십자가의 도를 통한 의의 말씀을 경험한 하나님의 자녀는 결코 자기 의지와 공력으로 피 값을 탕진하지 않
으며 자기 의에 열심 있는 육신의 행위를 쳐서 복종시켜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
이라(고전2:2) 이로써 낮아지고 무익함에 죽은 흙의 자리에서 아들의 생기로 거듭날 것이며 이후로는 오직 내 안
에 일 하시는 예수만 존귀히 되어 마지막 날에 아버지께서 영광으로 받으실 생명만으로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세상이 나를 대하여 내가 세상에 대하여 죽은 자를 세상이 볼 때에는 하나님께 열심 없는 나태함으로 나타나 혈육에 함께 속한 자녀들은 세상의 정죄와 핍박에 굴복하여 때때로 잘린 뱀의 꼬리처럼 이미 죽은 자기 의지를 다시 부추겨서 헛된 열매를 위해 애쓰던 날도 많이 있었습니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3:3)
집요한 사람의 의는 자기 열심을 부추켜 하나님의 영광보다 육신의 번영과 부흥에 가치를 두고 이러한 자기 구원의 욕심을 하나님의 열심이라 말합니다
-저희가 너희를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이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 붙여 너희로 저희를 대하여 열심 내게 하려 함이라(갈4:17)

십자가 위에서 이미 다 이루었다 하신 사실은 그리스도의 머리로써 단회적이며 단번에 주신 믿음 안에 있어서 자녀들은 아들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자기 일을 쉬심 같이 영으로써 자기 일을 쉬는 영원한 안식을 허락하셨습니다(히4:10)
또한 그의 형상을 본받아 행함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는 믿음의 실상을 이루어 가는 지속성에 있으며 이는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신 그리스도의 남은 안식을 그의 몸(교회)에 두고 이루심과 같습니다
(요5:17) 그러므로 자녀들은 그리스도의 남은 안식을 위하여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 자리로 돌아가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4:11) 자녀를 안식으로 인도하는 십자가의 도는 내가 죽은 자리이며 이제 거듭난 육체 가운데 의의 말씀을 행하는 자리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죽으심과 부활 하심에 연합하여 둘을 짝지어 하나 되게 하셨을 때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하셨으며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 하시더라(막10:9)하심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찌어다(롬6:11)
믿음은 내가 약해질 때마다 이미 죽은 몸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알고 행함은 내가 약할 때 강한 생명의 일하심을 깨닫는 것입니다 선물로 가는 열심 있는 이 길은 나온바 본향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아브라함의 길이며 예비된 죽음을 위해 자신을 태울 나무를 지고 스스로 모리아 산을 오르는 이삭의 길이며 실로 찾는 이가 적고 협착한 골고다의 길입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10:34)
믿음의 시작은 먼저 주님께서 주신 말씀의 검으로 자기와 및 육신의 가장 소중한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혈육의 정과 욕심에서 목 베임이 있고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로 접붙임을 받아 하나님을 향해 길 떠나는 신앙의 여정과 같습니다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히11:15-16)
금송아지를 만들면서 자기와 자녀의 안위를 가져다 준 바알을 버리고 아사셀의 염소처럼 제물이 되어 어두운 광야에 죽음을 향해 길 떠나는 일은 결코 누구에게나 허락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안식하시고 다시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아들로 말미암아 그 안식을 이루시는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자녀들은 약속과 증거로 주신 말씀을 받아 은혜의 선물과 화합된 진리의 열심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원한 안식에 이미 생명으로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하감하였도다(시85:11)

영문 안에서 기적과 병 고침으로 기뻐하고 오병이어로 배 부르며 죽은 자를 살리던 부흥과 번영의 순간들은 지나가고 인적도 끊기고 아버지마저 외면하신 영문 밖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세상 영혼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요16:32)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인 육신의 본향엔 인생의 병 고침과 번영과 배부름이 있고 기적과 은사와 표적이 있으며 자기 가치를 인정해 주는 살 만한 세상을 환영하여 오히려 예수 밖에서 자기 육의 빗장을 굳게 닫고 십자가를 원수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위한 자선과 선행의 공덕을 세워 자기 마음에 위안을 받고 인생의 가치와 행복을 더 하고자 애쓰는 것은 타 종교에서 더 열심 있는 일들이며 이는 사람의 의를 세우기 위함 입니다 결코 선행과 구제와 열심이 무용하다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사회의 유익을 위해 사람이면 당연히 지키고 행하여야 할 윤리적 규범과 예법들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이웃의 유익을 위해 나를 불사름 가운데 드려 세운 공력이 하나님 앞에서는 오히려 육신의 일과 불법을 행하는 자로 나타나 이러한 것이 결코 구원의 본질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3)

그리스도인이 이웃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하며 병든 자를 위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오히려 외적 거룩함에 치중하여 스스로를 억제하며 나의 아픔과 사정을 주께 고하지 못하는 것도 강도 만난 자로서의 은혜를 망각하고 육신은 벗었다 하나 아직도 율법의 눈치를 보며 진리 안에서 온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 옵소서”
자녀는 주 안에서 자유하여 항상 진리로 구하기를 힘쓰고 그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면 그것이 응답이며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소원임을 깨달아 알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죽은 영혼을 살리시고 영육 간에 병든 자를 고치시며 환란에서 평안으로 피할 길을 주실 뿐만 아니라 때로는 여전히 질병과 고통을 허락하시기도 합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나님의 공의하신 사랑은 나의 원대로 아니하실지라도 여전히 하늘 영광 중에 살아 역사하시며 때때로 자녀의 눈물을 외면하시고 안 돌아 보시는듯 하여도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히 나의 등 뒤에서 나를 지키십니다 나의 원하는 형통의 길을 아니 주실지라도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보배로운 믿음은 결코 나의 형편과 처지에 따라 흔들릴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4:7)
삶과 죽음의 모든 이치를 깨닫고 사망 권세를 이겼으니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 갈 길을 마치는 날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며 너의 쏘는 것이 어디냐 사망아 문 열어라!
걱정과 두려움 없이 죽어지면 우리가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할 것을 미리 보는 것은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과 증거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전쟁과 수 많은 죽음이 욕심에 굶주린 인간의 손에서 거리낌 없이 자행 된다고 해서 하나님이 안 계신 것이 아니며 병 고침과 기적과 표적이 있는 곳이라 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계신 것도 아닙니다 오직 사람이 하는 일과 하나님의 일이 다를 뿐이며 표적과 기적은 다른 종교와 귀신들도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 여정에 유익을 위해 주어졌던 표적과 기적과 은사 역시 의의 말씀이 경험되기 전까지 필요했던 것으로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과정으로 지나갈 것입니다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고전13:10)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전13:8)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바친 아브라함의 심정과 같이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를 찾는 아들의 외침마저 침묵하셔야 했던 하나님의 공의하심은 택하신 자녀들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스스로 아들의 양 손과 발에 대못을 박아야 했던 아버지의 아픔이셨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물 위를 걸으시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으며 소경과 문둥병자를 고치시고 주린 백성을 오병이어로 먹이신 일들이 구원의 본질이었다면 오늘날 이 땅엔 죽음과 질병과 기아가 그쳤을 것이며 주님께서도 십자가에 죽으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러한 표적과 기적을 보이신 것은 믿지 못하는 세상을 향해 그가 친히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어 자기 백성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한 방편이었음을 성경은 밝히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
그러므로 정작 영혼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실 때에는 모든 표적과 기적도 그치고 예루살렘 안에서 그의 능력을 환호하던 수 많은 인파의 그 인적마저 끊긴 골고다의 진실을 바라보면서 진정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9)

값 비싼 향유를 팔아 이웃을 돕거나 선한 일을 추구하는 종교는 많을지라도 예수의 죽음에 나를 부어 허비함으로써 구원에 이르게 함은 오직 택하신 자녀들에게만 허락된 것으로 보이지 않던 진리의 말씀이 영적 표적으로 나타나 믿음의 실상으로 만져지고 경험되어지는 것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은 인간의 선악 구조 속에서 안식일과 십일조와 구제와 도덕과 윤리를 따른 모든 율법적 의가 오히려 죄가 됨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며 때가 오래므로 지나가야 할 것들이 여전히 그리스도 도의 초보에만 머물러 있는 것도 합당치 않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세상에 오셨으나 아직 십자가를 지시기 전 모든 사람이 여전히 율법을 쫓아 살던 때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찌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그것을 하리라(히6:1-3)
오늘날 세상적인 교회들이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욕심의 성전을 세우려고 예수를 팔아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열심으로 헌신과 충성과 믿음을 강요하나 정작 하나님의 것 곧 생명을 도둑질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물질로 더럽히며 강도의 굴혈로 만들고 있음을 직시하고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녀들은 결국 자신이 쌓은 옛 사람의 성전에서 무너짐을 당하게 되어 있으며 이는 구약을 통해 이스라엘과 바벨론의 그림자로 이미 보이셨습니다 사람의 의와 공력을 다해 세운 바벨탑은 높이 쌓을수록 무너지기가 쉬운 법입니다 그러므로 새 생명을 얻기 위하여 믿는 자의 고난으로 주신 옛 사람이 무너짐을 두려워 말고 오히려 고난 가운데 감사와 기쁨으로 피로 맹세하신 아들의 죽음에 관한 증거와 약속하신 부활 생명의 유익함을 배워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의 생명만이 내 안에서 나타내심을 소망 중에 바라보며 기뻐할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10)

천지를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물질에 부족함이 있으셔서 자녀에게 치성적인 열심과 물질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 백성을 썩어질 물질로 시험치도 않으시며 자녀들은 주실 복을 기대하고 시험하며 예물을 드려서도 안됩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부분적인 것을 드리거나 외식하는 자들의 십의 일을 원치 않으시고 아들의 속전으로 산 생명의 전부를 원하심을 간과치 말아야 합니다 천국 보화는 내 육의 전부를 팔아야 살 수 있으며 하나님의 집은 썩을 양식을 쌓는 곳이 아니라 생명의 양식을 채우는 곳입니다

지존하신 하나님의 의는 사람의 의와 같지 않습니다
아들에게 주어 있게 하신 생명의 의는 포도원에 일찍 온 자나 늦게 온 자에게 한 데나리온의 품삯으로 차별이
없으십니다 일 한 것이 없는 자와 경건치 않은 자를 의로 여기시며 불의한 재물로 사귄 친구로 영생을 준비케
하시는 하나님의 의는 사람의 이해를 구하지 않으시고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만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아말렉을 쳐서 짐승은 물론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까지 도륙케 하
심을(살상15:3) 순종의 의로 여기시며 간음한 자를 돌로 쳐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의가 될지라도 하나님 나라의
통치는 여전히 공평한 홀이십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롬10:3)
그러므로 사람이 인식하는 선악의 틀 안에서 율법을 쫓아 도덕과 윤리적 가치로 계산해 내는 인과율로는 십자
가의 도를 통하여 지성에서 영성에 이르게 하시는 의의 말씀을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
며 마음으로 깨달아 낼 수 조차 없는 일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갈2:17)
거듭남에 있다 하는 이들이 범하는 오류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은혜의 무게가 너무 가볍다고 여기면서 그 은혜에 무언가 자기의 노력과 수고를 보태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보다 나은 거룩함을 보이고자 애쓰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율법적인 의가 그것 입니다 예수께서 시험의 광야에서 우리를 위해 주리시고 목마름으로 생명을 위해 주신 하나님의 기뻐하신 금식은 간과
하면서 이레에 두번의 금식을 더하여 정하신 율법에 자기 의를 보태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롬11:6)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선물과 열심을 호도하여 그 은혜의 자유를 교만과 방종으로 게을리 행하
여 진리의 집에서 멀리 떠나 있는 탕자의 삶을 자유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 또한 자기를 부인 못한 혈과 육이
아직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
다 더 많이 수고 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이와 같이 죄 사함을 받은 자녀들에게도 아직 몸의 구속을 훼방하는 육의 잔재들이 남아 있어서 하나님의 영으로 애굽의 장자(첫사람)들과 아말렉(육)을 남김없이 도륙하며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순종의 삶이 있어져야 합니다 육신과의 화평을 거부한 성령의 검은 내 몸의 행실을 죽이며 내 안에서 옛 사람의 아비 대적 마귀와 싸우며 내 육신의 전부인 자식까지 찌를 수 있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어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위하여 자기 육체와 함께 영혼을 바치신 존귀하신 예수로만 항상 기뻐하고 날마다 나를 드리는 기도의 삶을 쉬지 않으며 새 생명을 사는 모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육신의 생각을 지배하는 선악의 휘장을 찢으시고 생명으로 들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기
위하여 주와 함께 죽은 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과 열심입니다 이는 죽은 자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산 자의
믿음 안에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여 믿음으로 시작하신 이로 말미암아 믿음에 있게 하신 생명 안에서
이루시고 필하시고 끝내실 것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러므로 이제 내가 거듭난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 사는 것입니다

상기한 바와 같이 사람이 세상에서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놓아 버리면 결국 세상을 쫓아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 상태에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자체가 용감하기 짝이 없는 일이며 자녀는 여기서 강도 만난 자로 죽을 수 밖에 없는 흙의 본질을 보게 됩니다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후1:9)
이로써 자신의 자아를 자각하고 하나님 절대 의존적 상태가 되어질 수 밖에 없는데 이 앎의 시작을 거듭남이라 하며 이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산 자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은총을 거저 받은 우리는 하늘에 빚진 자로서 이전에 가치있게 여기던 자기를 부인하는 보배로운 믿음의 선물을 간직하기 마련입니다 또한 은혜의 주님을 선전하는 열심은 땅 끝까지 전하는 진리의 증거로 나타나 이를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행함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강도 만나 죽음과 방불한 자에게는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시며 하나님의 아들로 보내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곧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5:8-9)

지금 내게 보여지는 가시적인 열매를 볼 수 없다 해서 불안해 하거나 낙담할 일은 결코 아닙니다 불안과 염려마저 사람이 자기를 채우지 못한 욕심의 발로일 뿐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는 나를 기대하는 자체가 죄로 드러날 뿐입니다 오직 한가지로 치우쳐 무익한 자기를 부인하고 육을 십자가에 장사 지냄으로써 내게 영으로 사신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만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기뻐할 것입니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3:4)
비록 아직은 거듭난 영이 장성치 못하여 몸의 습관과 행실이 허물로 남아 있아 있을지라도 이미 아들로 이뤄 놓
으신 영혼구원의 선물을 믿는 믿음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열심 있는 행함이 또한 몸의구속을 이루어 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며 오늘도 내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
루어 내시고 계십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1:6)

강도 만난 자의 삶을 살며 세상 도처에서 목 베임을 받은 그루터기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육체의 남은 때를 사는 참빛의 자녀들은 주께서 우리에게 어떠한 사랑을 주셨는가를 늘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그 은혜에 빚진 자로 자기를 부인하며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며 그리스도의 증인된 삶을 살 때에 약속이 더디다 생각될지라도 인내와 오래 참음으로 소망 중에 주님을 바라 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서 약속의 선물로 시작하신 이가 증거의 열심을 이루실 때에 자녀들은 오직 믿음으로 화합하여 겉 사람은 후패하고 속 사람은 나날이 새로워지는 생명의 삶을 살아 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
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
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3:2-3)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사37:32)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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